며칠 전 한 카페에서 우연히 지인의 대화를 엿들었다. “메타버스에서는 한국어가 진짜 사라질 수도 있다던데?”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귀가 솔깃했다. 메타버스가 도대체 우리말에 무슨 영향을 끼친다는 걸까. 사실 메타버스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모호한 상태에서 언어와의 관계를 논한다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분명 짚어볼 만한 지점이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가상공간에서의 언어 사용 패턴이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사용자들은 실시간 음성 채팅보다 텍스트 기반 대화를 주로 한다. 그런데 이 텍스트가 기존 채팅보다 훨씬 짧고 파편화되어 있다. ‘ㄱㅊ’, ‘ㅇㅋ’, ‘ㅅㄱ’ 같은 초성체가 기본이고, 이모지와 스티커가 문장을 대체한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줄임말 유행’ 정도로 치부하기엔 무언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것 같다. 실제로 한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1시간 동안 채팅 로그를 수집해본 적이 있는데, 전체 메시지의 60% 이상이 5글자 미만이었다. 특히 감정 표현은 거의 전적으로 이모지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는 언어의 경제성 추구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동시에 복잡한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 약화될 우려도 있다.
더 흥미로운 건 메타버스가 만들어내는 신조어들이다. ‘랜드'(land를 붙인 공간명), ‘월드'(특정 테마의 세계), ‘아바타'(사용자의 분신) 같은 용어가 일상어처럼 쓰인다. 문제는 이 단어들이 대부분 영어에서 왔다는 점이다. 순우리말이나 한자어 기반의 창조적 합성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겨레의 메타버스 언어 분석 기사에 따르면, 국립국어원이 조사한 메타버스 관련 신어 중 70% 이상이 외래어나 외국어를 그대로 차용한 형태라고 한다. 이 수치는 단순히 유행을 넘어서, 언어 창조의 주도권이 외국어에 넘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내가 직접 국립국어원의 ‘신어 자료집’을 뒤져본 적이 있다. 2021년부터 2023년 사이에 등록된 메타버스 관련 신어 약 200개를 살펴봤는데, ‘디지털 트윈’, ‘확장 현실’, ‘공간 컴퓨팅’ 같은 용어가 대부분이었다. 이 중 ‘누리집’, ‘온라인 세상’ 같은 순화어는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메타버스’라는 말을 ‘가상 현실’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순화어들이 공식 문서나 교육 자료에서는 사용되지만 실제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언어 변화의 방향이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사용자들의 실제 사용 패턴에 의해 결정됨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두고 ‘국어가 위험하다’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유동적이고, 외부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언어는 없다. 우리말도 한자어와 일본어, 영어의 영향을 수없이 받아왔다. 중요한 건 수용의 방식이다. 메타버스가 단순히 외래어를 주입하는 통로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어의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 내에서 한국어 사용자들은 ‘핑’, ‘렉’, ‘버프’ 같은 게임 용어를 일상 대화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이 단어들은 원래 게임 맥락에서 나왔지만, 이제는 ‘회의가 핑이 높다'(지연된다), ‘기분이 렉 걸렸다'(둔해졌다)처럼 은유적으로 확장되어 쓰인다. 위키백과의 ‘게임 용어’ 문서에도 나와 있듯, 이런 용어들은 이미 일상어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2030 세대 사이에서는 ‘버프 좀 받았다’는 말이 ‘기분이 좋아졌다’는 의미로 널리 쓰이고, ‘디버프’는 반대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외래어가 단순히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의 의미망 속에서 새로운 뉘앙스를 획득하는 과정이다.
사실 내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작년에 한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한국어 강의를 진행하면서다. 강의 중에 ‘메타버스 안에서 존댓말과 반말을 어떻게 구분할까?’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 깨달았다. 가상공간에서는 현실의 사회적 계층이나 나이가 무의미해지면서, 언어의 위계 구조가 급격히 해체되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많은 메타버스 플랫폼이 기본 설정을 반말로 하고, 사용자가 원할 때만 존댓말로 전환하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편의를 넘어, 평등 지향적인 가상 공간의 문화를 반영한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어의 고유한 사회적 기능 중 하나인 ‘관계 맺기’가 약화될 위험도 있다.
이는 한국어의 큰 특징 중 하나인 경어법 체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만약 메타버스 세대가 현실에서도 존댓말을 덜 쓰게 된다면, 한국어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메타버스가 오히려 경어법을 더 세분화된 방식으로 발전시킬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아바타의 레벨이나 길드 내 지위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는 새로운 경어 체계가 생길 수도 있다. 이미 일부 게임에서는 ‘길드 마스터’에게 ‘님’을 붙이거나,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관행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한 새로운 사회적 위계의 탄생을 암시한다.
최근 한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메타버스 사용자들의 언어 사용을 분석한 결과, 기존 오프라인보다 더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게임 아이템 이름이나 퀘스트 설명 등에서 창의적인 합성어가 발견되었다. ‘하늘을 나는 성’, ‘시간을 거스르는 시계’ 같은 표현이 실제로 플랫폼 내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이는 메타버스가 오히려 언어의 창의성을 자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사용자들은 특정 상황에 맞는 은어를 빠르게 만들어내며, 이는 마치 새로운 방언이 생겨나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우리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개인적으로는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다. 메타버스가 한국어를 죽이기보다는, 한국어가 메타버스를 자기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이미 ‘트위터’가 ‘트윗’으로, ‘구글링’이 ‘검색하다’로 대체되지 않고 공존하고 있듯, 메타버스도 결국 한국어의 일부로 흡수될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은 있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한국어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순화어를 만들어 쓰는 운동을 벌이거나, 교육 현장에서 메타버스 언어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미 국립국어원은 ‘메타버스 관련 용어 순화 자료집’을 배포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파급력은 미미하다. 플랫폼 차원에서 한국어 사용자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어 어휘를 확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다. 예컨대, 게임 내 아이템 이름을 한글로 짓는 캠페인이나, 채팅에서 순화어를 사용하면 보상을 주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메타버스가 한국어에 해로운가’라는 이분법적 질문보다는, ‘우리가 메타버스 속에서 어떤 한국어를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능동적 질문이다. 언어는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디지털 환경은 그 진화를 가속화할 뿐이다. 나는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한국어가 더욱 풍부해질 가능성에 조금 더 기대를 걸어본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해서도 조금은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느린 속도로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던 문화나,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며 존댓말을 고르던 섬세함이 사라질까 걱정된다. 하지만 언어는 언제나 변화해왔고, 그 변화는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동반한다. 메타버스 속 한국어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